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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고전경제학 국부론에서 국부가 증가하는 과정

by 땡큐베리머취 2022.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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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가 증가하는 과정을 알아보겠습니다. 

 

부의 자연적인 진행 과정

 

농촌은 도시에 식량이나 제조품의 원료를 공급하고 반대로 도시는 농촌에 제조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시와 농촌의 관계는 상호 이득이 되는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농촌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비하고 남은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파는데 그 시장이 바로 도시에 있는 시장입니다. 따라서 도시 주민의 수와 수입이 클수록 농촌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시장은 커질 것입니다. 또 생필품을 생산하는 산업은 사치품을 생산하는 산업보다 우선합니다. 생필품을 생산하는 농촌은 도시에 우선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아무 인위적인 방해가 없다면 도시는 주변의 농촌에 의해 유지되고 그 이상 확대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시의 제조업과 해외 무역의 관계를 보면 동일한 이윤을 발생시키는 경우 자본가들은 해외 무역보다 국내 제조업에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해외 무역은 위험 요소들이 많습니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소비하고 남은 상품이 있다면 해외에 수출하려 할 것이고 산업의 자연적인 발전 순서는 농업이 가장 우선이고 그다음이 제조업, 해외 무역 순이 됩니다. 그러나 유럽의 많은 나라들에서 이런 자연적 순서가 뒤바뀌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우선 해외 무역을 하는 도시에서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자 도리어 농업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유럽에서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 모든 토지는 소수의 대지주에 의해 독점되었습니다. 그리고 토지를 상속하는 데 장자 상속법이 도입되면서 소수 대지주의 토지 독점은 더욱 굳어졌습니다. 장자 상속법은 토지의 주인이 죽으면 오직 첫째 아들만이 토지를 상속받을 수 있는 반면 분할 상속권은 토지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상속받게 됩니다. 토지가 생존 수단이 아닌 권력으로 여겼기 때문에 장자 상속법이 토지 독점을 더 부추겼습니다. 대토지의 소유자는 왕같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애덤 스미스는 이 제도를 가장 부조리한 제도라고 비난했습니다. 마치 한 아이를 부유하게 하려고 나머지 아이들을 가난 속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제도 하에선 대지주가 토지를 개량해 토지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기대하기가 어려웠고 토지를 경작하는 사람들에게 토지의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한 토지 개량을 기대하기는 더 어려웠습니다. 그틀은 노예처럼 주인에게 속한 것은 아니었지만 토지와 함께 매매될 수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매일매일 생활할 수 있는 급료는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초과하는 수확은 모두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노예 노동 다음으로 분익농 제도가 나타났는데 이는 우선 지주가 경작에 필요한 씨앗, 가축, 농사 장비 등을 제공하여 농부가 농사짓게 하고 지주는 자신이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득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수확량을 지주와 농부가 반반씩 나누는 제도였습니다. 이 경우도 농부가 자신이 저축한 자본을 경작에 투자하는 것은 이익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은 수확량을 지주와 농부가 같이 나누기 때문에 지주의 자본을 이용하는게 더 이익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은 농사 외에도 지주를 위해 여러 가지 서비스와 노동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농업의 개량이 일어나는 것은 힘든 일이었으며 농부들은 열등한 사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또 유럽의 정책은 토지 생산량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곡물 수출을 금지했고 유럽 국가들은 곡물을 포함한 모든 공업 생산물들의 국내 상업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농업 발전의 기대는 어려웠습니다.

 

도시의 발전 과정

 

로마 제국 몰락 후에 도시의 상인들이나 수공업자들은 농촌의 농부들같이 거의 노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시장에서 다른 시장으로 떠도는 매우 가난하고 비천한 상태였으며 다른 대지주의 농장을 통과할 때마다 각종 세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시민들은 빨리 자유와 독립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왕이 특정 도시들로부터 세금을 받아들일 때 도시의 행정 장관 같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대신 거둬들이게 했는데 왕의 요청을 받은 그들이 세금을 걷어 왕에게 납부하면 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왕은 자신이 요청한 세금을 받고 세금을 거둬들이는 권한을 영구히 시민들에게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도시는 자유 도시가 되고 시민들은 자유 시민, 자유 상인으로 불렸습니다. 도시들은 자치 단체를 조직했고 자신들의 시의회와 행정 기구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방어를 위해서 성을 짓고 모든 시민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켜서 성을 지키게 하는 특권도 가졌습니다. 당시 도시의 군대는 영주들의 군대보다 더 강력한 경우가 많아서 도시가 인근 귀족들을 정복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귀족들까지도 도시로 이주하여 살도록 강요 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도시는 안전과 자유가 보장된 반면에 농촌은 토지 소유자들의 온갖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농부들은 많이 생산할수록 더 많은 압제를 받았기 때문에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하려 들지 않았고 농촌에서 조금이라도 저축을 해서 자본이 생기면 도시로 도망을 갔습니다. 도시는 여유 자본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도시 주민들이 언제나 자신들의 식량, 제조업의 원료들을 농촌으로부터 얻어야 했지만 바다와 강을 끼고 있는 도시들은 식량과 재료를 농촌에 의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먼 나라의 무역을 통해 충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들은 인근 농촌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큰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고 상업 도시의 주민들은 다른 나라의 제조품이나 사치품을 수입하여 농촌 지주들의 토지 생산물과 교환했습니다. 제조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도시 상인들은 운송비를 절약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같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것이 도시의 제조업을 발달시켰습니다.

 

 

도시의 상업이 농촌의 발전에 한 기여

 

상업, 제조업의 발달로 도시의 부는 증가했고 도시 주변에 있는 농촌의 발전에도 기여를 했습니다. 첫째, 도시는 농촌의 천연 생산물에 대해 크고 편리한 시장을 제공해서 농촌에 공헌했습니다. 특히 도시 근처의 농촌은 먼 거리에 있는 농촌보다 운송비가 절약되니까 같은 가격에서는 절약된 운송비 만큼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둘째, 도시의 주민들은 늘어난 재산을 가지고 농지를 구입하여 토지를 개량할 수 있었습니다. 상인들은 보통 지주가 되려는 욕심이 있었고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여 이윤을 내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원래의 지주들은 소비하기만을 좋아하고 토지에 자본을 투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인들은 이익이 생긴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투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도시에서 농촌으로 자본을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상공업과 제조업은 농촌 주민들에게 질서와 훌륭한 정치, 그리고 자유와 안전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영주들에게 거의 노예와 같은 상태로 살았던 농촌 주민들에게 상공업이 가져다준 교육의 효과는 중요했습니다.

 

 

원래 대지주는 그 지역의 영주였습니다. 무역이나 제조업이 발달하기 전에 영주들은 자신의 농지에서 생산할 것과 교환할 상품이 없었기 때문에 주로 자신의 허영을 채우는 데 재산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하인들은 대지주에 종속된 상태로 살 수밖에 없었고 대지주는 자기 하인들의 재판관이었고 전쟁 시기에는 지도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확고하게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외국과의 무역이나 제조업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있었습니다. 무역과 제조업의 발달은 대지주들에게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을 제공해 주었고 스스로 자기의 재산을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자 자신들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대지주들은 다이아몬드 같은 사치품들과 수천명 하인들의 1년 생활비를 기꺼이 교환하게 되고 지출이 늘어남에 따라 하인들의 수를 줄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욕심과 허영심을 만족시키려고 토지의 지대를 인상시키려 했고 이에 토지 경작자들은 지주에게 장기 계약을 요구했습니다. 이 장기 계약은 토지 경작자들에게 지주로부터의 독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지주는 더 이상 계약서에 있는 내용 이상을 경작자들에게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지주는 사치품을 수집하는 취미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권한을 팔아버린 결과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동기를 가졌던 대지주와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서 부지런히 행동했던 상인과 제조업자들에 의해 사회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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