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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고전경제학 국부론의 핵심 내용

by 땡큐베리머취 2022.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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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삶의 지혜와 위대한 사상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영국의 애덤 스미스가 1776년 3월 9일에 발표했습니다. 그는 이후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국부론은 본래는 '여러 국가들의 부의 성질과 여러 원리에 관한 연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여러 국가들의 부의 성질과 원리들에  관한 이론서입니다. 국부론의 기본 과제는 '국가의 재산을 늘리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가?' 입니다. 이런 면에서 국부론은 최초의 경제 종합 교과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부론에서는 국가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생산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산력이란 물질적인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즉 생산력은 인간이 토지 위에서 일할 때 나타납니다. 이 경우는 토지와 노동이 생산력의 두 가지 요소가 되고 생산물은 그 결과로 나타납니다. 애덤 스미스는 생산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분업을 제시하고 있고 이는 사람들에게는 물건을 교환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교환하려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이고 서로의 이기심 때문에 교환이 이루어집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와 같은 교환 성향이 이기심에 의해 촉진되고 이것이 분업을 일으킨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이기심이 경제 활동의 원동력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어느 회사 사장이 항상 타인의 이익만 위하고 자신과 회사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장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장은 자신과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만 하므로 이기심은 경멸의 대상이라기보다 장려되어야 하는 사항이 됩니다. 그러나 경제 세계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에 경제를 맡겨두는 것이 효과적이고 국가와 사회에 좋다고 했으며 이는 곧 경제 활동이 국가와 사회의 번영에 도움이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경제 활동에서의 이기심은 무한정 발휘되기보다 국가와 사회의 번영과 정의의 한계 내에서 허용이 됩니다. 교환이 없는 분업은 성립될 수 없고 분업이 발달한 사회는 상업 사회로 불 수 있습니다. 이런 상업 사회는 바로 시민 사회를 뜻합니다. 시민 사회란 분업과 교환을 축으로 유지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자유 경쟁이 '자연 가격'이라는 바람직한 상태를 가져오고 사회에 만족과 안정을 가져옵니다. 자연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형성되는 가격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자유 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면 사회가 풍요로워집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었고 중농주의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중상주의는 자국의 경제를 더 유리하게 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를 보호 육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의 간섭 정책과 특정 산업을 장려하는 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부유하게 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국가가 경제를 규제하는 것을 철폐하고 자유 무역이 국내의 상공업자들을 육성한다고 말하는 중농주의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중농주의 경제학자 케네는 농업은 순 잉여 생산물을 만들어 내지만 공업이나 상업은 그렇지 못해 비생산적이라고 주장했는데 스미스는 이에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농업을 세 명의 아이를 낳는 결혼이라고 하고 상업과 공업은 두 명의 아이를 낳는 결혼이라고 봤을 때 세 명의 아이를 낳은 사람이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명의 아이를 낳은 사람을 비생산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비유했습니다. 

 

결론은 국가의 간섭이 없다면 자연적으로 분업 구조가 형성되어 각 개인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생산해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로 높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개인의 이익이 사회의 일반적 이익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간섭이 없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경제는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스미스는 경제가 먼저 있고 정치가 나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재산이 형성되면서 소유의 안전성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이 시점에 국가가 탄생하고 법이 제정된 것입니다. 법의 목적은 재산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고 국가의 목적은 재산 소유자를 보호하는데 있습니다. 당시 스미스의 이런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국 사회는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되기 전 단계였고 영국을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국가 권력이 사회와 경제를 장악하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자였던 스미스는 조국 영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중상주의 정책을 격렬하게 반대했으며 국방은 재산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항해법은 영국의 상업 규칙 중에서도 가장 현명한 규칙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영국인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고 있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항해법이란 1651년 영국 정부가 제정한 것으로, 해외 국가와 영국 간의 상품 무역을 영국 선박이 독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해운계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네덜란드로부터 영국을 보호하려는 입법이었던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일반 시민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정부의 고유한 역할로 국방, 사법, 공공 사업 및 청소년 교육 등을 꼽았습니다. 국가는 개인이나 기업의 경제 활동을 지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정부의 역할 중 경제는 빠져있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값싼 정부라며 비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강화되고 증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가가 많은 일을 하게되면  필요한 경비를 능률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선진 영국을 배경으로 이론을 전개했기때문에 자연히 후진국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었고 독일 학자들이 스미스를 많이 비판했습니다.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후진국 독일의 입장에서 그를 비판했습니다. 첫째, 리스트는 스미스가 개인의 이기심으로 인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개인이 스스로를 희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리스트는 만약 스미스의 자유주의 사상이 독일에 도입된다면 독일 국가나 국민이 해체되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둘째, 리스트는 스미스가 세계주의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영국의 특권 유지에만 힘쓴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로부터 영국의 해운업을 보호하기 위한 항해법을 칭찬한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리스트는 스미스를 영국 산업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려 노력한 사람으로 몰아세웠습니다. 영국인 스미스의 자유주의 사상이 독일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며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국부론을 비판한 또 다른 사람은 마르크스입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에 대해 스미스와 마르크스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스미스에 따르면 세계는 조화와 번영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장미빛 미래입니다. 자유 경쟁으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생산할 수 있고 이것이 번영의 미래를 가져온다고 보았습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근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는 그 자체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해 멸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국부론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르크스는 근대 사회는 경제가 정치에 우선한다는 스미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마르크스가 사회를 지나치게 경제 결정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경제 결정론은 경제가 정치, 문화, 예술 등 사회의 모든 영역들을 결정한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스미스는 근대 사회가 노동자, 자본가, 지주로 구성된다고 보았는데 마르크스 역시 노동이 상품화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했지만 차이점은 있습니다. 스미스가 말하는 노동자들은 가내 노동자같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지 않은 노동자들이었고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자들은 기계화된 공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스미스의 근본 사상은 토지, 노동, 자본의 생산물이 한 나라의 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는데 토지의 소유주는 지대를, 노동자는 임금을, 자본가는 이윤을 자신의 몫으로 가져간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유 경쟁이 되면 평등한 시민들 간에 같은 노동량이 교환된다는 노동 가치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도 이를 받아들였지만 지주와 자본가가 받는 이윤은 아무 노력 없이 받는 대가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마르크스는 노동만이 유일하게 생산물을 증가시킨다는 극단적인 노동 가치론을 주장했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했던 마르크스의 사상도 많은 부분을 국부론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나름대로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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